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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속작은학교 제 13회 졸업식 <내가 먼저 그 곳에 서있을게>

결국 모든 걸 ‘함께’ 한 도시속작은학교의 13번째 졸업 이야기.

관리자 기자2018.03.11 16:36:16

 시립서대문청소년수련관(관장 황인국) 「도시속작은학교」의 제13회 졸업식이 지난 1월 25일 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에서 열렸다.
 졸업식 당일은 한파주의보까지 내린, 참으로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면서 졸업식이 열리는 동교동에 기어코 도착했다. 10대 시절 같이 가출을 했던 친구부터 학교를 안 간다고 할 때마다 직접 집에 찾아가 결국 등교를 시켜준 선배들,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인사 없이 지나가도 말없이 과자를 챙겨주던 기관 선생님들, 잘 하겠다는 약속을 번번히 지키지 못할 때면 습관처럼 함께 안산을 오르던 후배들, 그리고 이 모든걸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부모님들까지. 
 오늘 이 곳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들의 파란만장한 10대를 옆에서 함께한 이들이었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졸업생들에게 오늘이 어떠한 의미일지 알기에, 도시속작은학교의 제 13회 졸업식이 열린 동교동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날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 4명이 시작한 졸업식, 4명이 함께 졸업하지 못할 위기에 봉착하다. 
 “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졸업식. 하지만 졸업의 과정이, 저희에게는 가파른 오르막길 같았습니다. 오른다면 결국에 만난다는 <오르막길>이라는 노래가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속작은학교 13회 졸업식의 첫 공연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4명의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이겨냈던 스무 해의 날들을 노래로 풀어내며 졸업식을 시작했다. 음정도, 박자도 서툰 참으로 멋없는 노래였다. 이 노래들은 하루에 4시간~5시간씩 열심히 연습한 결과였다. 
앞에서 무언가를 해 본 경험이 없는 탓에 동작 하나를 4명이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수처럼 잘하지는 못해도 한 음 한 음 정성껏 부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처음엔 움츠러들어 작았던 소리가 점점 커졌고, 함께 조금씩 음을 맞춰 나갔다.  
 사실 이번 졸업식은, 4명으로 시작했지만 4명이 모두 완주를 하지 못하게 된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졸업생 중 한 명이 중도에 포기를 선언했던 것. 학교에 오는 것 자체가 힘들어 잠시 이 곳을 떠나기도 했던 친구였다. 어쩌면 졸업식을 함께 하겠다고 용기낸 것 자체가 이 친구에게는 도전이었다. 모두가 ‘그래. 여기까지만 했으면 됐지, 뭐.’ 했을 때, 함께 졸업하는 동기들이 나섰다. 
“우린 친구거든. 널 도와줄 수 있는 동기들. 너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중도포기를 선언한 친구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3명의 친구들은 연습 의자를 항상 4개 가져다놓고,  3명이 돌아가며 중도포기한 친구의 역할을 대신하며 연습을 진행했다. 일찌감치 3명으로 동선을 변경해 연습하면 수월했을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락조차 잘 되지 않았던 친구에게,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자신들이 조금 더 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건넨 채 기다렸다. 
  그렇게 이주일 쯤 지났을 때, 중도 포기를 선언했던 친구는 다시 돌아왔다. 
“ 겁없이 달래도 철없이 좋았던 그 시절 그래도 함께여서 좋았어.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뚜벅 뚜벅, 기교 하나 없지만 수십 번을 연습한 진심을 담은 투박한 노래들이 그렇게 졸업장에 울려퍼졌다. 

□ 같이 웃다가, 같이 울다가
 서툴지만 열심인 노래에 관객들이 흐뭇한 웃음을 보내는 것도 잠시, 도시속작은학교의 전통인 자서전 낭독 시간이 되자 모든 이들이 숙연해졌다. 
 늘 밝게 웃던 윤형준 학생 (20)은 “가출을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놀 때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속이 타들어갔을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쓰리다.. 막상 자퇴서를 제출 하고 나니 뭘 할지 생각이 안 나 집에서 잠만 잤다.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하고 막막했다.”며 지난 19년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인생을 이야기했다. 어릴 때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들, 그 상처를 고스란히 풀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지난 날들, 그런 자신을 보며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 속 깊이 쌓여있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여곡절 많은 열아홉의 해였다. 
  그래서였을까. 남들은 받으면 어디에 둔 지도 잊어버리는 그 졸업장 하나가 이들에게는 특별했다. 정다빈(20) 학생의 어머니는, 딸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며 “다빈아!” 라는 한 마디만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정다빈 (20) 학생이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주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도, 관객도, 사회자도 그 순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함께 울었다.    

□ 잘 살아볼게요, 행복하세요! 
  졸업생들이 입학할 때, 교사들은 선글라스∙ 빨간 스카프 ∙ 뽕 블라우스 등 해괴망측한 복장을 하고 <써니> 춤을 췄었다. 오늘은, 그 때의 입학생들이 졸업생이 되어 교사들과 함께 <써니> 춤을 추었다. 연신 눈물을 흘리던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활짝 웃었다.
 “잘 살아볼게요. 행복하세요.” 라는 플랜카드를 보며, 이 순간을 함께한 모든 이들은 졸업생들의 새로운 시작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4명이 함께 못할 뻔 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함께 울고 웃었던 가장 추운 날 따뜻했던 졸업식이었다. 
조충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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