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전통 명절인 설날이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많던 적던 몸과 마음에 연휴의 휴유증을 안고 출근을 하였을 것입니다.
들떴던 마음도 가라않히고 고향에서 만났던 부모 형제 친적과의 만남도 이젠 다 내려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겠지요
그런데 명절이 끝난 이후에는 예외없이 안 좋은 소식도 들려 오곤 했습니다. 명절 다음 달이 이혼율이 제일 높다고 하지요. 심지어 이전 명절에는 어떤 가족 모두가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이런 소식들이 안 들려 온다면 좋겠군요.
그런데 왜 그런 일들이 생길까요?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이유들 중에는 바로 명절이 가족들간의 만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렇지 않은데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에 이런 일이 생긴다니 대단히 아이러니한 이야기이지요.
가족!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가족이기 보다는 과거의 가족일 것입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은 현재의 가족이 있기에 과거의 살붙이들은 과거의 가족일 것입니다. 때에 따라선 시간과 공간의 큰 간격이 서로에게 존재할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의 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과거의 나를 현재로 연결시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그다지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더욱 인정받고 싶어 더 과시하려 들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피붙이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과시하려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무시하려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과시와 무시는 서로의 짝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너를 아는데 네가 변해봐야 얼마나 변했겠냐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예수도 고향에 가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과거의 어린 꼬마 예수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가까운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인데 격려해주고 축하해주고 칭찬해주면 될 것을 나의 자격지심인가 나의 고정관념인가 상대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나의 불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의 마음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 속엔 각자의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을 읽노라면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보일 것입니다. 부모에게 형제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의 어린아이의 갈망.
그러할 땐, '아! 당신이 인정받고 싶어하는구나. 그래 내가 인정해 줄께. 내가 크게 격려해 줄께'라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훨씬 마음이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혹시 어느 분은 '나는 힘들고 어려운데 누구는 잘 되는구나' '나는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아'라며 마음이 힘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알게 모르게 비교하게 됩니다. 서로 먼 사람끼리의 비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유독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비교는 마음에 우월감과 열등감이 더욱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열등감에는 자신도 모르게 화남, 그 뒤를 이어 우울감이 몰려 옵니다.
이러할 땐 어찌해야 할까요?
이런 느낌이 올 땐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읽기 바랍니다. 혹시 나의 어린아이가 씩씩거리거나 힘들어 하지 않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힘내 임마, 네가 왜 주눅들고 그러니? 그는 그고 나는 나야, 그는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야. 나는 내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되는 거야!'
어떤 이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 그의 이야기를 모두 부정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대상이 아버지, 어머니이거나 형이나 언니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들에게 특히 구박받고 살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들만 봐도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히 과거의 내가 아닌데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로 회귀하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를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것이 상대를 강하게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가 멀쩡하게 내 앞에서 옛날의 그 모습을 재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내 어린아이는 그 아픔이 생각나 울부짖는 것입니다. 그가 내 마음의 상처의 쓴뿌리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족문제의 원형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내 마음이 그를 용서한다면 내 어린아이는 더 이상 울부짖지 않습니다.
용서는 성숙한 자가 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윗사람이 하는 행위입니다. 이미 내 마음은 성숙한 윗사람이 되었기에 그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들에겐 '정서(情緖)'로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받아 주고 공감해 주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려 해도 가르쳐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만을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짧은 시간의 만남에는 훨씬 좋습니다. 일만 자의 글귀보다 훨씬 더 값진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이렇게 인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상대방에 따라 경어를 쓸 필요는 없지만 진심을 담아 인사해 보십시오.
"지난 1년간 많은 관심과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새로운 한 해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