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3일 앞둔 지난 22일 본 기자는 홍은동에 위치한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대문구지회 사무실을 찾았다.
여러단체들이 촘촘히 붙어있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돌아 들어선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이하는 80순의 老 전우이신 구장회 회장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모르게 부끄러움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65년전 그해 그 여름으로 돌아갔다.
민의원의 아우였던 구장회 회장이 14살 때 정치인 가족의 처형을 피해 어머님과 누이동생이 함께 오른 피난의 길은 수원옆 남양만에서 피난대열에 인민군이 숨어들었다는 정보로 아군비행기의 무자비한 폭격속에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끝없는 피난길은 부산까지 이어졌고 어린나이에 부산 영도다리 밑 무동력선에서 소금가마 뒤집어 쓰고 잠자던 그 생활은 그 시대 모든 분들이 겪었던 일이었다는 담담한 말씀속에서 영화속에 많이 보았던 전쟁속의 한 장면이 그려지듯 그때의 처절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
한창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1953년 4월 극한의 굶주림과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삶중에 눈에 뛴 것은 해병대 지원모집 공고문이었고 이왕에 죽을 것이면 군대가서 나라를 위해 죽자고 결심한 만16세의 구장회회장은 해병대 27기로 입대 8주간의 훈련을 마친후 해병제1전투단에 배속됐다.
당시 육군의 작전지역이었던 백마고지는 휴전 회담이 한창이었던 당시 철원평야의 확보를 위한 피아간에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전투지였고 이에따라 해병제1전투단이 백마고지에 투입 탈환작전에 돌입했다.
구장회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훈련을 마치자 마자 배치된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심정으로 뺏고 뺏기던 일주일간의 처절했던 그 전투는 결국 승리로 끝났고 6·25전쟁중 가장 치열했던,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전투로 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전투로 함께 했던 전우의 절반을 잃었고 그 슬픔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다신 장단사천강지구 전투에 배치되어 서부전선 연백평야와 옹진반도 탈환을 위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지금의 도라산 전망대 위치로 당시 해병대 OP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곳에서 전투중 7월 27일 밤 10시 청색신호탄의 발사와 함께 휴전이 선포되었고 3년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마침내 막을 내리든 순간 우리 모두는 이젠 살았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그때가 벌써 62년이 흘렀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도 10년간 군생활은 계속되었으며 중사로 제대 13년간의 군 생활은 어찌보내 자신의 삶의 전부였으며 지금도 6·25참전유공자회 서대문구지회장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구장회 회장의 80노구는 지금도 그때의 그 눈빛을 그대로 간직한 듯 인터뷰를 하는 후배의 마음을 짓눌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꿈속에서조차 그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구장회 회장은 어떻게 지켜온 대한민국, 우리나라인데 작금의 세태를 보면 욕지기가 나올 수 밖에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책으로 그림으로 본 그대로 사실로 알고 믿으면 다시는 이런 전쟁을 겪지 않을 텐데 지금은 휴전중이며 전쟁은 아직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않았다.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6·25참전유공자 중 서대문구에는 총 1,36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480여명이 서대문구지회 회원으로 가입돼 지역사회 발전과 6·25 바로알리기 교육등에 동참하고 있다.
어쨌던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하며 이를 위한 남북간의 대화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정치인들의 몫이기에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고는 구장회 회장
비록 단 일주일간의 전투이후 6·25전쟁은 마감되었으나 백마고지의 영원한 영웅으로 길이남을 구장회 회장의 간절한 바램, 아직도 진행중인 이 전쟁을 이제는 끝내고 더 이상의 전쟁의 처참함이 다시 없기를 기원한다는 그 염원이 꼭 이루어 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